글/글스케치 5

[글스케치] 빈 제목

컵에 차를 담아왔다. 더운 날씨 탓에 땀이 흐른다. 나는 무엇을 쓰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았을까. 러닝머신을 걸으며 김영하 작가의 강연 한 편을 들었다. '사람은 글을 쓴다. 자신이 압박받거나 궁지에 내몰렸을 때조차 사람은 글을 쓰려고 한다. 글을 쓰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와 같은 말을 담백하게 전했다. 최근 글쓰기 교육을 해 볼 심산으로 가볍게 유튜브에 검색해 본 결과였지만, 고민의 실마리는 길어졌다. 나도 무언가를 쓰려는 욕망은 있으나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고, 쓴다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고 쓰는 사람은 적겠지만) 이 욕망을 끈기 있게 지니고 갈 열정이 부족한 것을 의미로써 둘러대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늘 시도하고 무너지기를 반복한다. ..

글/글스케치 2023.09.07

[글 스케치] #04. 집게

알파벳 'Y' 모양을 닮았다. Y자의 아래선을 둥글게 말아 넣으면 꼭 집게 모양이다. 윗선 안 쪽에는 스프링이나 철사가 들어있어 윗선을 서로 맞닿도록 힘을 주어 눌렀다가도 힘을 빼면 다시 벌어지게 해 두었다. 평소에는 입을 꾹 닫고 있다. 정상적인 집게는 아무런 물리적 압력을 가하지 않았을 때 힘을 잔뜩 주고 허공이든, 빨래든, 사진이든 입에 물려주는 것을 물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 대신 힘을 나누어 주었을 때 비로소 꽉 붙잡고 있던 것을 놓는다.

글/글스케치 2021.08.26

[글스케치]#03. 선풍기

벽에 붙은 것도 있고, 바닥에 놓인 것도 있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생겼지만 보통은 막대사탕처럼 생겼다. 맨 밑은 바닥에 잘 붙을 수 있도록 평평하게 생겼고, 가느다란 몸체로 바닥에서부터 거리를 두어 바람이 나오는 머리부분이 있다. 머리는 축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룬 모양이다. 겉은 새장처럼 날개를 가둔다. 새장과 달리 나오지 못하게 하기보다 밖에서 안으로 건드리지 못하게끔 거리를 두고 가느다란 막대기를 둥글게 대어 놓았다. 안에는 비스듬한 판을 펼쳐두었다. 판은 중심으로부터 바깥쪽을 향해 점점 넓어진다. 낫의 날부분이 넓적한 모양을 생각할 수 있다. 모터의 힘을 받아 돌아가는데 모터와 연결된 부분은 날의 묶음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조임쇠가 있다. 모터가 돌아가면 고정된 중심축을 중심으로 판이 함께 돌고 틀..

글/글스케치 2021.08.24

[글스케치]#02. 빈 수레

직관적이고 투박하다. 녹이 슨 수레의 틀은 철근으로 되어있고 용접한 부분마저 그대로 드러나있다. 공사가 끝난 곳 주변의 폐자재를 흘깃 보면 늘상 보이는 얇고 긴 철을 이용해 넓적한 육면체 모양으로 이어붙이고 바닥과 가까운 부분에는 더 두꺼운 철로 물건이 들어갈 공간을 받친다. 그 공간은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값싼 자재를 위함인지 모르지만 닳아버린 나무 판자를 이용해 만들었다. 사람이 들어가 수레를 끌고갈 자리에는 철근을 휘어 호루라기의 취구 부분처럼 만들고 붙였다. 바퀴는 수레의 아래를 받치는 철근에 두께가 있는 철판을 용접해 달았다. 빈틈투성이인 바퀴는 밖으로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직설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꾸밈없는 모습이다. 버릇없게도 노동자의 모습이 비친다. 삶이 단단..

글/글스케치 2021.08.23

[글 스케치]#1. 휴지걸이

얇은 철판으로 뒤덮여있다. 양 옆은 두 팔을 앞으로 내민 것처럼 내부와 외부를 경계짓고 그 위에 끝이 약간 휘어진 철판을 덧대 윗부분을 보호한다. 양쪽 철판에는 구멍을 뚫어 위로 들어올렸을 때 접히는 막대를 집어넣어 휴지를 안정적으로 걸어놓을 수 있게 하였다. 휴지를 걸 때면 차갑게 철그렁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때도 있지만 그 순간도 잠시이며 평소엔 별로 손을 대지 않는다. 먼지가 잘 쌓이는 윗 부분은, 온전함과 거리가 멀어진 것의 원상태를 찾아주는 휴지를 보호해주지만, 스스로는 전혀 관심을 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한다. 다른 것을 보호해주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이 대신 상처입는다.

글/글스케치 2021.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