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에 차를 담아왔다. 더운 날씨 탓에 땀이 흐른다. 나는 무엇을 쓰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았을까.
러닝머신을 걸으며 김영하 작가의 강연 한 편을 들었다. '사람은 글을 쓴다. 자신이 압박받거나 궁지에 내몰렸을 때조차 사람은 글을 쓰려고 한다. 글을 쓰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와 같은 말을 담백하게 전했다.
최근 글쓰기 교육을 해 볼 심산으로 가볍게 유튜브에 검색해 본 결과였지만, 고민의 실마리는 길어졌다. 나도 무언가를 쓰려는 욕망은 있으나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고, 쓴다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고 쓰는 사람은 적겠지만) 이 욕망을 끈기 있게 지니고 갈 열정이 부족한 것을 의미로써 둘러대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늘 시도하고 무너지기를 반복한다. 중학생, 고등학생 때도 무언가를 쓰고 적기 위해 노트를 샀지만, 앞에 한 두장 정도 부끄러운 글을 적은 후 서랍에 넣고 그 위로 많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쌓이는 것을 늘 목격했다. 노래 가사를 쓰기도 하고, 생각을 적기도 하고, 일기와 시를 쓴 적도 있다. 하루는 아파트 너머로 비치는 가로등 빛에 감동하여 불을 다 끄고 그 불빛 아래에서 무언가를 적기도 했다. 하지만 늘 그러기를 하루, 이틀, 쉽게 놓치고 말았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매일 적겠노라, 일주일에 세 번은 적겠노라. 당당하게 마음먹고 선언한 뒤 의지가 점점 끌려다니다가 툭 하고 떨어지고 만다. 과거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 '글을 적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가 습관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글을 쓰고자 할까?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늘 글을 쓰고싶어지는 순간이 돌아온다. 그럴 때도 항상 뭘 쓸까 하다가 지금처럼 푸념을 잔뜩 적어두고는 스러질 것을.
문득 오늘 김영하 작가의 강연 중 일부분이 떠오른다. '사람은 온 몸이 마비가 되어도 눈 깜빡임으로 글을 쓰려하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글을 쓰려고 한다. 글을 쓰는 것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 자체로 자유롭다.'
내가 그동안 그래도 글을 꾸준히 썼던 때를 떠올려보면,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한 달 내내 글을 썼고, 군대에 있을 때도 매일매일 일기를 적었다. 무언가 결핍되거나 답답한 곳에서 글을 썼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을 쓰다가 허투루 되는 일은 내가 지낼만해서 그렇다는 단순한 결과가 나온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어딘지 창피하고 부끄러운 결말이지만 그렇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이끌려 무언가를 행동했다. 돈이 많이 없다는 생각에 재태크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을 잘 가야 한다는 생각에 수능 공부를 했다. 군대에서도 하루하루가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보고, 일기를 썼고, 부쩍 살이 올랐다는 생각에 운동을 했다.
부정의 감정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나태 속에 빠져있으니 나의 결핍을 다시 찾아나서야 하는 때인가 싶기도 하다. 극복이 아닌, 그 자체로 즐기며 하는 일을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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