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권 침해가 이슈다. 교사로서 교권이 이슈가 되어 착잡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을 보내고 있다. 연달아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에 나의 일처럼 슬퍼서 한동안은 우울감을 심하게 느끼기도 했다. 교사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서로 교권침해를 당했던 사연들을 공유하며 서로 위로하고 분개하는 실정이다.
우리 반은 30명의 학생이 있고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별 거 아닌 학생들의 다툼도 '올바른 행동과 생각'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들은 스트레스가 꽤 크다. 그 사이에서 교사가 원하는 방향과 학생이 원하는 방향, 학부모가 원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의 권리에 대한 침해는 크고 작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 생기는 교권 침해에 대한 이슈에는 교육의 3 주체(학생, 학부모, 교사)가 어그러지는 현 세태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에 대해 교사 한 개인으로서의 생각을 교사와 학부모 관계 속에서 주절주절 남겨보고자 한다.
학교와 가정의 역할
기본적으로 교사와 학부모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협력 관계'다. 그 목표는 한 아이를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키워내며 아이의 역량과 성품을 성장시켜 올바르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다. 이 목표는 교사만의 역할도 아니며 부모만의 역할도 아니다. 예로부터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함께 키워야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두 주체의 갈등은 이 목표를 향한 역할 영역이 뒤섞이며 시작된다.
한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 가정의 기본적인 역할은 '보호자'다. 아이가 도전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실패를 경험했을 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진흙탕에 몸을 던져도 돌아와서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가 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심지어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부모는 언제나 아이를 걱정하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학교'라는 사회에서 아이가 무슨 일을 당하지 않았는지, 속상한 일은 없는지,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신경 쓰는 것은 당연지사다. 따라서 학교에서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 때, 교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수 있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상담하고 고민하여 함께 변화를 꾸려갈 수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할 때 학교의 기본적인 역할은 '조력자'다. 학생이 올바른 생각을 갖고 바른 태도와 행실로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가르치고, 올바른 학습 습관과 생활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사회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학생은 규율을 익혀야 하고, 자제력과 인내심을 위해 참고 통제하는 습관을 기른다. 그리고 한 가정의 아이는 학교에 오는 순간 한 명의 학생이 된다. 학교에 오는 순간 30명 중 한 명의 개인이 되고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며 '나'에 대해 더욱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교사는 의례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처럼 한 학급에서 규칙을 만들고 학생들이 미숙하게나마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간다.
이 사이에서 학생은 학교에서는 도전하고 고난을 겪으며 집으로 돌아가 휴식과 안정을 취한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보호자와 이야기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학교에 와서 시도해보며 자신을 갈고닦는다.
한 가지 상황을 예로 들자면, A학생이 신나서 뛰어다니다가 다른 친구와 부딪혀 그 친구가 다쳤다면, 교사는 A학생을 혼낸다. 우리는 교실에서 뛰면 안 된다는 규칙을 갖고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조심히 걸어 다녀야 함을 가르친다. 그리고 학생에게 자신의 실수에 대해 사과토록 하고 다짐을 받아낸다. A학생은 선생님 앞에서 혼나서 속이 상했지만 우선 알겠다고 한 후 집에 가서 불만을 토로한다. 가정에서는 아이의 마음을 안아주고 새로운 행동 방식을 함께 생각한다.
위의 상황에서 학생은 잠시 마음이 다쳤지만, 교사와 학부모의 목표는 같다. '규칙이 있으니 따라야 하고, 올바른 행동은 다른 학생을 배려하여 뛰지 않는 것이다.'를 아이이자 학생에게 알릴 수 있다. 이로 인해 A학생은 교실에서 뛰고 싶어도 한 번은 참고, 나도 모르게 뛰었다면 주변을 더욱 살피게 된다. 이렇게 학교는 학생에게 객관적인 시선을 바탕으로 해야 할 규율을 알려주고 가정에서는 마음을 알아주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마음을 이끌어준다.
내가 겪어본 바로는 30명의 학생들 중 대부분의 학생은 위와 같은 이상적인 흐름을 갖는다. 하지만 교실의 1-2명의 학생과 그 학부모께서는 '보호자'의 역할을 교사에게 요구한다. '우리 아이의 마음이 다쳤다.', '정서적으로 가혹한 것이 아니냐.'와 같이 항의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제도와 법과 관행은 그러한 항의에 엄청난 힘을 실어준다. 그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 교사는 고소를 당하기에 결국 모든 문제 상황을 회피하게 된다.
감정적인 민원은 학생들이 바르게 성장하기 위한 가정(회복)과 학교(도전)의 메커니즘을 단번에 부순다. 교사와 상담하며 교사가 잘못 생각한 부분이나 보호자로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물어보고 함께 올바른 교육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항의와 요구로 이어진다. 그 순간 모두에게 일관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규칙과 객관적인 시선은 사라지고 무법지대가 되며 결국 그 피해는 규칙을 잘 지키고 집에서 스스로 갈고닦은 학생들이 받게 된다. 실로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현재 교사들은 다음에 대해 요구하고 있다.
1. 민원 창구의 단일화
- 감정적인 항의가 아닌, 이성적인 '협력과 대화'를 위해 필요하다. 현재 민원 시스템은 교사가 어느 때이건 전화를 받게 되어있다. 그런 민원은 다분히 감정적이다. 차가운 이성으로 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루트로 민원을 전달하며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함은 분명하다.
2.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 아동학대처벌법의 도입 배경은 '가정에서의 폭력'이 문제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네이버 뉴스에 아동학대법을 검색 후 오래된 순으로 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으며 https://www.kwnews.co.kr/page/view/2014010300000000124 2014년 아동복지법 관련 기사를 보아도 그 근간을 살필 수 있다. 오히려 교사를 아동학대신고 의무자로 설정한 것도 당시 다른 기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 하지만, 근래에 아동학대처벌법은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간다. 당연히 애초에 도입 배경이 '가정에서의 폭력'이었다고 현재 교사에게 적용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님들도 많았기에... 다만, 명확한 기준도 없이 단순히 '정서적 측면'을 강조하며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니 처벌이 가능하다는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다.
끝으로
교사로서의 편향적인 입장을 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최대한 업무와 교직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담지 않으려 노력했고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여 주절거려 보았다.
모쪼록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